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이 누구이신지 물어보십니다. 공생활 3년 동안 예수님 과 제자들은 동고동락(同苦同樂)을 했을 터인데 갑자기 당신이 누구이신지 묻습니다. 이 물음은 예수님의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입니다. 당시 일반인은 엘리야와 같은 예언자라고 봅니다. 그리고 당신의 제자 중 베드로만 예수님을 ‘그리스도’ 이십니 다. 라고 대답합니다. 정말 어부 출신인 베드로가 그리스도라는 말을 알고 했을까 또 그 의미를 알고 있었을까 의문이 생깁니다. 그리스도(Χριστός)라는 말은 즉, 당시 이스라엘 말로 메시아 "기름 부음을 받은 사 람" "구원자", "해방자"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제자 베드로는 심사숙고 없이 “예수님은 구원자 이십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느님의 힘으로 말하는 것(마 태:16,16-17) 이며 성령으로 가득 찬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구원자 예수님은 우 리의 능력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의 힘으로 이해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구원자 예수님을 알게 된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예고에 아연실색합니다. 특히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에 격하게 반박합니다. 주님을 붙들고 반박하는 베드로의 모습이 참 와 닿습니다. “왜 기쁘고 행복한 일만 가득한 세상에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주님이십니다. 무엇이 두려워 죽으셔야 합니까.” 라고 예수님 께 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는 세상에 메어져 있었던 것이고, 우리 눈앞에 펼쳐진 또 다른 진실인 죽음을 거부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 대한 애착과 집착에 기인합니다. 애착과 집착은 끊임없이 하느님의 것을 거부하기에 예수님도 “사탄아 내게서 물러 가라”하고 외치시나 봅니다. 애착(愛着)과 집착(執着)을 잘 들여다보면 놓는 것이 아니 라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내어주고, 받들 어주고, 위해주는 것들로서 애착과 집착에서 자유로워진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십니다. 더 낳아가 애착과 집착에서 벗어난 것은 한마디로 자신을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과 의지 및 욕구를 주님께 받치는 것이 ‘버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이럴 때 마음가짐이 아마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과도 연결될 듯합니다. 세상은 참 편하고 유익한 것들도 많습니다. 또 많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 거에 비해 분쟁이 많아지고, 갈등이 격화되고, 잔인한 범죄들이 더 많아지는 이유는 평 화의 부재 일 것 입니다. 이 평화는 하느님 안에서만 누릴 수 있습니다. 인간이 주는 평 화란 욕구의 해소 즉, 집착과 욕구의 해결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이 욕구와 애착은 끊 임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버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 그러 면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욕구와 애착을 놓음으로서 자신의 십 자가를 쉽게 지는 것 자체가 평화의 길이며 영원한 생명의 길을 가는 것임을 일깨워 주십니다. 이번 주 자신이 가장 많이 애착하고 집착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주 님께 봉헌하는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대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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