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Search
  • choiclara7

애착(愛着)과 집착(執着) (9-12-202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이 누구이신지 물어보십니다. 공생활 3년 동안 예수님 과 제자들은 동고동락(同苦同樂)을 했을 터인데 갑자기 당신이 누구이신지 묻습니다. 이 물음은 예수님의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입니다. 당시 일반인은 엘리야와 같은 예언자라고 봅니다. 그리고 당신의 제자 중 베드로만 예수님을 ‘그리스도’ 이십니 다. 라고 대답합니다. 정말 어부 출신인 베드로가 그리스도라는 말을 알고 했을까 또 그 의미를 알고 있었을까 의문이 생깁니다. 그리스도(Χριστός)라는 말은 즉, 당시 이스라엘 말로 메시아 "기름 부음을 받은 사 람" "구원자", "해방자"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제자 베드로는 심사숙고 없이 “예수님은 구원자 이십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느님의 힘으로 말하는 것(마 태:16,16-17) 이며 성령으로 가득 찬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구원자 예수님은 우 리의 능력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의 힘으로 이해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구원자 예수님을 알게 된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예고에 아연실색합니다. 특히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에 격하게 반박합니다. 주님을 붙들고 반박하는 베드로의 모습이 참 와 닿습니다. “왜 기쁘고 행복한 일만 가득한 세상에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주님이십니다. 무엇이 두려워 죽으셔야 합니까.” 라고 예수님 께 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는 세상에 메어져 있었던 것이고, 우리 눈앞에 펼쳐진 또 다른 진실인 죽음을 거부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 대한 애착과 집착에 기인합니다. 애착과 집착은 끊임없이 하느님의 것을 거부하기에 예수님도 “사탄아 내게서 물러 가라”하고 외치시나 봅니다. 애착(愛着)과 집착(執着)을 잘 들여다보면 놓는 것이 아니 라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내어주고, 받들 어주고, 위해주는 것들로서 애착과 집착에서 자유로워진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십니다. 더 낳아가 애착과 집착에서 벗어난 것은 한마디로 자신을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과 의지 및 욕구를 주님께 받치는 것이 ‘버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이럴 때 마음가짐이 아마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과도 연결될 듯합니다. 세상은 참 편하고 유익한 것들도 많습니다. 또 많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 거에 비해 분쟁이 많아지고, 갈등이 격화되고, 잔인한 범죄들이 더 많아지는 이유는 평 화의 부재 일 것 입니다. 이 평화는 하느님 안에서만 누릴 수 있습니다. 인간이 주는 평 화란 욕구의 해소 즉, 집착과 욕구의 해결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이 욕구와 애착은 끊 임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버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 그러 면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욕구와 애착을 놓음으로서 자신의 십 자가를 쉽게 지는 것 자체가 평화의 길이며 영원한 생명의 길을 가는 것임을 일깨워 주십니다. 이번 주 자신이 가장 많이 애착하고 집착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주 님께 봉헌하는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대선 신부

11 views0 comments

Recent Posts

See All

주님 세례 축일과 영적 진보( 01-09-2022)

우리는 흔히들 영적 여정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비우고 그곳에 하느님께서 머무시도록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일상 안에서 그것을 실현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도전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영적 여정에서 보다 더 중요하고...

소경 바르티메오 ( 10-24-2021 )

복음서를 읽다보면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구원을 받습니다. 한마디로 예수 님을 만나면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중 '예리코의 소경' 담화는 참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성서는 티메오의 아들 바르테메오라는 거지 소경을 이야기합니다....

Comments


bottom of page